본문 바로가기
🔬 몸의 신비

🤧 추우면 감기 걸린다는 말, 절반만 맞습니다

by 내몸박사 2026. 5. 11.
추운 날씨 떄문에 감기에 걸리는걸까?

겨울철 바깥에서 잠깐만 있어도

"이러다 감기 걸리겠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두꺼운 옷을 입고 나왔는데도 찬 바람이 목을 스치는 순간,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오릅니다.
"추운 데 있으면 감기 걸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믿고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름에도 냉방병으로 목이 칼칼해진 경험은 없으신가요?
에어컨 바람 아래에 시원하고 따뜻하게 잠든 다음 날 아침,
코가 막히고 목이 따갑던 그 느낌.
추운 겨울도 아닌데 감기 증상이 찾아왔을 때,
 
"그럼 추위가 원인이 아닌 건가?" 하고 잠깐 의아했을 것입니다.
추위 때문에 감기에 걸리는 것이 아니다?
사실 감기(상기도 감염, upper respiratory infection)
추위 자체가 만들어내는 병이 아닙니다.
 
원인은 바이러스이고, 추위는 그 바이러스가
더 쉽게 침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조력자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말도 전부 맞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추우면 감기 걸린다"는 말이 어디까지 맞고,
어디서부터 틀린지를 과학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냉방병과 여름 감기의 정체도 함께 짚어봅니다.

🦠 감기는 추위가 아니라, 바이러스가 만든다 

감기를 걸리게 만드는 리노바이러스
감기의 약 50~80%는 리노바이러스(Rhinovirus)가 일으킵니다.
그 외 코로나바이러스, RSV, 아데노바이러스 등이
나머지를 나눠 담당합니다.
 
이 바이러스들은 감염된 사람의 비말(droplet)이나
오염된 손·표면을 통해 전파됩니다.
 
추위와 감기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코 점막의 방어 기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코 속에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점액과 섬모
코 안쪽은 점액(mucus)과 섬모(cilia)로 덮여 있습니다.
이 구조는 마치 "바이러스를 잡아 뱉어내는 컨베이어 벨트"와 같습니다.
섬모가 쉼 없이 움직이며 침입한 이물질을
목구멍 쪽으로 쓸어내 삼키거나 뱉게 합니다.
 
그런데 차가운 공기를 마시면 문제가 생깁니다.
 
코 점막 온도가 떨어지면 섬모의 운동 속도가 느려지고,
점액이 굳어지며 바이러스 제거 효율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2022년 Huang 등의 연구에서는
코 내부 온도가 4°C 하락할 때
선천성 면역 반응(innate immune response)이
약 42% 억제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즉, 추위는 직접 감기를 만들지는 않지만
바이러스가 침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합니다.
이것이 "추우면 감기 걸린다"는 말이
완전히 틀리지 않은 이유입니다.

🔬 왜? 리노바이러스는 저온을 좋아하는가

리노바이러스의 활성을 나타내는 온도는 체온보다 조금 낮다.
리노바이러스에는 흥미로운 특성이 있습니다.
체온(37°C)보다 낮은 33~35°C에서
복제 효율이 더 높아집니다.
이는 우리 코 안 온도와 거의 정확히 일치합니다.
 
분자 수준에서 설명하자면, 리노바이러스의
바이러스 복제효소(RNA-dependent RNA polymerase)
저온에서 더 활발하게 작동하도록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또한 세포의 아포토시스(apoptosis, 세포 자살) 반응이 저온 환경에서 지연되면서,
감염된 세포가 오래 생존해 더 많은 바이러스를 만들어냅니다.
이 과정은 마치 "냉장 보관된 공장이 오히려 더 오래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한편, 겨울철 실내 환경도 감기 전파에 결정적입니다.
난방으로 습도가 떨어지면
바이러스가 담긴 비말이 더 오래 공중에 떠 있습니다.
 
2021년 Moriyama 등의 연구는 낮은 습도(20~35% RH)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생존 시간이
습도 50% 이상 환경보다 3~4배 길어짐을 확인했습니다.

⚠️ "추위가 감기를 일으킨다"는 말의 진짜 문제

많은 사람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추운 데 오래 있었더니 감기 걸렸어."

그런데 이 믿음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면,
오히려 과학적으로 부정확합니다.
 
추위는 감기 바이러스를 만들지 않지만,
감염 가능성을 높이는 조건을 쌓습니다.
 
1958년 머리 박사(Murray)는 지원자들을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게 한 후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시키는 실험을 했습니다.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근 그룹의 감기 발병률이 더 높았지만,
이는 추위가 바이러스를 만든 게 아니라
이미 잠복 중인 바이러스의 증상 발현을 앞당긴 것으로 해석됩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믿음이 진짜 예방을 방해한다는 점입니다.
추위를 피하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실제 전파 경로인 손 씻기, 밀폐 환경 환기,
감염자와의 접촉 차단을 소홀히 하게 됩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지 않고,
따뜻한 실내에서도 감염자의 손을 잡으면 감기에 걸립니다.
 
올바른 시각은 이렇습니다.
추위는 위험 인자(risk factor)이지 원인(cause)이 아닙니다.
 
감기 예방의 핵심은 바이러스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것이며,
추위 속에서는 코 점막 보호에 더 신경 쓰는 것이 현명합니다.

💡 겨울 감기와 냉방병, 각각의 예방 전략

가장 중요한 것은 손 씻기입니다.

 

감기 바이러스의 상당수는 오염된 손을 통해 코와 눈의 점막으로 이동합니다.
외출 후, 식사 전, 코를 만진 후에는
비누로 20초 이상 씻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입니다.

추운 날 외출 시 코 점막 보호도 중요합니다.

마스크나 목도리로 코를 가리면
흡입 공기를 어느 정도 데워 섬모 기능 저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실내에서는 가습기로 50% 내외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음은 냉방병(air conditioning illness) 이야기입니다.

 

냉방병은 바이러스 감염이 아닙니다.
에어컨의 강한 바람이 코 점막을 건조하게 만들고,
급격한 기온차가 자율신경계를 교란하면서 생기는 증상입니다.
 
두통, 피로감, 목 불편함 등이 주된 증상이며,
바이러스 감기와 달리 타인에게 전파되지 않습니다.
 
에어컨 바람이 직접 닿지 않도록 자리를 배치하고,
실내외 기온차를 5°C 이내로 유지하면 예방할 수 있습니다.
 
단, 다음 증상이 있을 때는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38°C 이상의 발열이 3일 이상 지속되거나,
누런 가래나 심한 인후통이 동반될 때,
또는 호흡이 어렵거나 흉통이 느껴질 때는
 
단순 감기 이상의 감염일 수 있습니다.

추위는 감기의 원인이 아니라 조건입니다.

바이러스가 없으면 아무리 추워도 감기는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추위 속에서 코 점막이 약해지면,
바이러스가 그 틈을 더 쉽게 파고듭니다.
 
예방의 핵심은 바이러스 접촉 차단이며,
추위 속에서 우리 몸이 더 취약해진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겨울 동물들은 체온을 낮추어 에너지를 아끼고 환경에 적응합니다.
우리 몸도 추위 앞에서 방어 비용을 아끼며 재조정됩니다.
그 틈에 침입자가 들어오는 것처럼, 자연은 항상 약해진 틈을 찾아냅니다.

📚 참고문헌

감기 바이러스 및 전파 메커니즘
* Huang D et al. — Cold exposure impairs extracellular vesicle swarm–mediated nasal antiviral immunity (Journal of Allergy and Clinical Immunology, 2022) 🔗 https://pubmed.ncbi.nlm.nih.gov/35680519/
* Eccles R — An explanation for the seasonality of acute upper respiratory tract viral infections (Acta Otolaryngologica, 2002) 🔗 https://pubmed.ncbi.nlm.nih.gov/12542519/
 
리노바이러스 저온 복제
* Foxman EF et al. — Temperature-dependent innate defense against the common cold virus limits viral replication at warm temperature in mouse airway cells (PNAS, 2015) 🔗 https://www.pnas.org/doi/10.1073/pnas.1411030112
* Palmenberg AC et al. — Sequencing and analyses of all known human rhinovirus genomes reveal structure and evolution (Science, 2009) 🔗 https://pubmed.ncbi.nlm.nih.gov/19213880/
 
습도와 바이러스 생존
* Moriyama M et al. — Seasonality of Respiratory Viral Infections (Annual Review of Virology, 2020) 🔗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7154563/
* Shaman J, Kohn M — Absolute humidity modulates influenza survival, transmission, and seasonality (PNAS, 2009) 🔗 https://pubmed.ncbi.nlm.nih.gov/19204283/